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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의 일상은 결국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입니다. 변화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누가 그 변화를 주도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로부터 누가 가장 큰 수혜를 얻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는 일이 투자자의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도 예외가 아닙니다. 건물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만 그 건물의 가치와 효용은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모이는 도심 상권이 가장 강력한 부동산이었고, 전자상거래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물류센터가 새로운 핵심 자산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AI가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부동산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리츠 투자도 이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리츠에 투자한다는 것은 리츠가 보유한 부동산에 간접적으로 투자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부동산 그 자체가 아니라 리츠, 즉 부동산투자회사의 지분에 투자합니다. 결국 투자자는 자신의 자본을 특정 부동산 포트폴리오뿐 아니라 그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경영진에게 맡기는 셈입니다.
따라서 리츠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건물을 갖고 있는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경영진이 세상의 변화를 얼마나 빨리 읽고, 그 변화에 맞춰 자본을 어디에 배분하는지가 장기 성과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AI가 이끄는 부동산 시장의 변화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AI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센터 수요입니다. AI는 얼핏 보면 소프트웨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변화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자의 눈으로 보면 AI는 거대한 물리적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산업입니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수많은 이용자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반도체, 막대한 전력, 안정적인 냉각 설비, 초고속 네트워크, 그리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요합니다. 
맥킨지는 2030년까지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가 연평균 21% 증가할 것이며, 그중 상당 부분이 AI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용량 수요 전망. 자료=McKinsey & Company, Scaling bigger, faster, cheaper data centers with smarter designs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과거의 데이터센터와 성격이 다릅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데이터를 계산하고 판단을 만들어내는 공장에 가깝습니다. 거대한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훈련용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과 고밀도 서버를 필요로 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AI 서비스를 사용할 때 필요한 추론용 데이터센터는 낮은 지연시간과 강력한 네트워크 연결성을 요구합니다. McKinsey는 향후 AI 추론 수요가 데이터센터 수요의 중요한 축으로 커질 것이며, 이 경우 지연시간과 네트워크 연결성이 핵심 입지 조건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새로운 인터넷 고속철도가 연결되다
자료=ChatGPT 생성
네트워크 연결성,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베리아 반도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2017년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그리고 스페인 통신 인프라 기업 텔시우스(Telxius)는 미국 북버지니아와 스페인 빌바오를 잇는 초고속 해저 통신 케이블 마레아(Marea)를 완공했습니다. 이후 2022년에는 구글이 미국과 영국, 스페인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를 완공하며 이베리아 반도의 연결성은 한층 더 강화됐습니다.
북버지니아, 특히 애쉬번 일대는 클라우드, 콘텐츠, AI 인프라가 밀집한 지역으로 전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시장입니다. 과거 북버지니아의 유럽의 네트워크는 주로 대서양을 건너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등 북서유럽 주요 허브를 통해 남유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마레아의 설치는 이베리아 반도를 AI와 클라우드 시대의 새로운 디지털 관문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동산의 가치는 때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선에서 변화하기도 합니다. 도로가 생기면 물류 부동산의 지도가 바뀌고, 지하철역이 생기면 상권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AI 시대에는 해저 케이블과 전력망, 그리고 네트워크 지연시간이 부동산의 새로운 입지 조건이 됩니다. 마레아가 연결되면서 빌바오와 이베리아 반도는 단순한 관광지나 산업도시를 넘어, 미국과 남유럽을 잇는 디지털 관문으로 다시 읽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AI 시대, 스페인 리츠의 새로운 승부수
이베리아 반도 변화의 수혜를 받는 이번 유럽 리츠 기행의 두 번째 주인공은 스페인 상장 리츠 메를린 프라퍼티스(Merlin Properties)입니다. 메를린은 원래 오피스, 리테일, 물류 등 전통적인 상업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운영하던 복합 리츠였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이베리아 반도가 가진 새로운 디지털 입지 가치에 주목했습니다. 2021년 메를린은 마드리드, 빌바오, 바르셀로나, 리스본에 고효율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데이터센터 투자에 나섰습니다. 
자료=2021년 Merlin Properties 연차 보고서 
이 변화는 자산 매각에서 출발했습니다. 2022년 메를린은 Net lease 포트폴리오를 약 20억 유로에 매각했습니다. 안정적이지만 성장성이 제한적인 자산을 매각해 재무 여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성장 자산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메를린은 기존에 보유한 토지, 상업용 부동산 운영 경험, 이베리아 주요 도시의 입지, 그리고 AI·클라우드 수요 증가를 결합했습니다. 1단계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총 64MW 규모, 투자금액은 약 6억 유로를 집행했습니다. 초기 투자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메를린은 1단계 64MW가 전량 임대됐고, 2027년 기준 약 9,700만 유로의 총임대수익이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회사는 데이터센터 투자를 한 단계 더 확대하기 위해 2024년 7월 약 9.2억 유로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습니다. 해당 증자는 데이터센터 2단계 투자 재원으로 활용되었으며, 이후 254MW 규모의 Phase II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반응은 이후 더 우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메를린은 2026년 3월 다시 약 7.6억 유로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이 증자는 할인 없이 진행됐고 12배 초과청약을 기록했습니다. 앞서 투자한 데이터센터의 임대 성과와 AI 인프라 성장성에 대해 시장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결과입니다.
국내에서는 리츠의 유상증자가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과 배당 부담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메를린의 사례는 다릅니다. 명확한 성장 투자처가 있고, 해당 투자가 높은 수익률과 자산가치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된다면 유상증자도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성장의 재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2025년 vs 2032년 데이터센터 임대수익 비중. 자료=2025년 Merlin Properties 연차 보고서
메를린은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Phase III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플랫폼의 규모를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회사는 2032년 안정화 기준 총임대수익이 약 18억 유로까지 증가하고, 이 중 데이터센터 비중이 65%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2025년 데이터센터 비중이 6%였던 점을 감안하면, 메를린은 전통 상업용 리츠에서 디지털 인프라 리츠로 빠르게 체질을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데이터센터 개발 순임대수익률 9.59%의 의미
메를린이 제시한 데이터센터 개발수익률은 14.4~15.8% 수준입니다. 단순화하면 100을 투자해 안정화 기준 연간 약 15의 총임대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이 수익이 모두 순수익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운영비용을 차감해야 실제 자산가치 산정의 기준이 되는 순임대수익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메를린의 발표 자료를 기준으로 현재 데이터센터의 총임대수익에서 비용을 차감해보면, 순임대수익률은 약 10.2%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 수익성 측면
데이터센터의 순임대수익률 10.2%는 메를린이 기존에 보유해 온 전통 자산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메를린의 오피스, 물류, 쇼핑센터 포트폴리오의 임대수익률은 각각 4.9%, 5.7%, 6.4% 수준입니다. 이에 비해 데이터센터는 기존 전통 자산 대비 약 1.6~2.1배 높은 임대수익률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차이는 메를린의 자본배분이 왜 오피스와 리테일 같은 성숙 자산에서 데이터센터라는 성장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 자산가치 측면
부동산 가치는 일반적으로 순임대수익률을 시장 Cap Rate로 나누어 산정합니다. 앞서 순임대수익률은 10.2%이었고, 최근 데이터센터 거래 Cap Rate를 5.5%로 가정하면, 개발원가 100을 투입해 만든 자산의 가치는 약 186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즉, 개발원가 대비 약 86%의 가치 상승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이를 메를린의 1~3단계 데이터센터 투자계획 전체에 적용하면, 총 투자비 약 13조 2,600억 원을 투입해 안정화 이후 약 24조 6,600억 원 규모의 자산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이 경우 개발원가 대비 평가차익은 약 11조 4,000억 원에 달합니다.

자산을 매각하지 않더라도 평가가치 상승은 NAV 개선과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높아진 주가를 바탕으로 더 낮은 비용의 자본을 조달해 추가 투자를 집행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이야기는 다시 리츠 투자의 본질로 돌아옵니다. 리츠 투자는 단순히 건물을 사는 투자가 아닙니다. 투자자는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회사의 지분을 사는 동시에 그 부동산을 어떻게 운용하고 어디에 자본을 배분할지 결정하는 경영진의 판단에 투자합니다. 같은 오피스, 같은 쇼핑센터, 같은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경영진의 선택에 따라 리츠의 미래는 달라집니다. 어떤 경영진은 변화 앞에서 방어적으로 움직이고, 어떤 경영진은 변화의 방향을 읽어 자산의 쓰임과 가치를 다시 정의합니다.
코벤트 가든이 런던의 소비와 관광을 담아내는 부동산이라면, 메를린 프라퍼티스스의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의 데이터와 전력을 담아내는 부동산입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부동산이 담아내는 수요도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부동산의 가치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데이터가 흐르고 전력이 모이는 장소도 새로운 부동산의 가치가 됩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먼저 읽고 자본을 배분하는 리츠가 다음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갑니다.
이지스자산운용 대체증권투자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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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와 투자자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