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은 어느 때 보다 혹독하게 추운 것 같습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섯 번 정도의 ‘난리’가 있었는데 1998년 IMF, 2002년 사스 바이러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9년 코로나19, 그리고 지금의 경제위기(훗날 무슨 위기라 명명 되어질지 궁금합니다.) 입니다. 무엇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더 힘들기는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기는 하겠지요. 아직도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IMF 가 그 중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소개하면 이 공포스러운 2023년을 마무리하기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전이 도움이 될 것도 같았고 더 노력을 하고 파이팅을 외쳐보는 자기계발서 생각도 났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는 글보다는 그림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골라본 책 3권은 ‘단군 이래 미술계 최대 뉴스’라고 불리는 고(故) 이건희 회장 컬렉션 국가 기증과 관련된 책들입니다. 아직도 제가 사보지 못한 컬렉션에 관한 신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오늘 소개해 드리는 책은 ‘어느 수집가의 초대’ 도록 1 권,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 가까이에서 보필하고 호암미술관과 리움을 만들 때 일했던 이종선 관장의 ‘리컬렉션’, 그리고 최근 발간된 국민일보 문화전문기자 손영옥 씨의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입니다.
각 책마다 특징도 있고 기증품이 워낙 많고 폭이 넓어서 아직도 관련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 책들을 읽으면서 이건희 회장이 어떤 관점으로 미술품을 컬렉션 했는지 따라가다 보면 세상 근심이 조금 내려질 듯도 합니다.
2022년 용산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는 티케팅을 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마치 어느 집에 초대된 것 같은 동선으로 꾸며진 전시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느 수집가가 여러분을 집으로 초대합니다.수집가의 집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수집품이 가득합니다.
이 수집품에는
생각하고 도전하고 상상력을 펼치고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온
인류의 궤적과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이제 수집가가
자신의 수집품이 품고 있는
인류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 특별한 수집품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로 시작하는 책은 전시장의 작품들을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은 비싸고 유명한 작품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들, 조금 손상이 있더라도 그 시기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작품들도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예술 역사를 잘 표현해 주는 전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한 집안이 대를 이어 이런 컬렉션을 갖는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이 작품들을 나라에 기증하여 국민 모두, 아니 어쩌면 세계인 모두와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을 준 것 만으로도 정말 단군 이래 최대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게다가 이것을 한 곳의 미술관에만 기증한 것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 특히 예술가의 고향에 있는 미술관에 기부를 하여 지방 미술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계기로 우리나라도 이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지방에 있는 전시를 보러 가는 풍경이 생긴 것 같아 미술 애호가의 한 명으로서 참 기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레 이 작품들을 모은 기준과 모으는 동안의 에피소드가 궁금해질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이종선 관장의 리컬렉션에 있습니다. 이 책의 발행 시기는 2016년이기 때문에 기증을 결정하기 전에 나온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실제 이병철 회장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어있습니다. 어떻게 호암 미술관을 짓게 됐고 그 후에 리움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이씨 가문의 컬렉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그 궁금증의 아주 일부를 풀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인 이종선 씨는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 교수가 되려고 차근차근 공부하던 중 교수님이 갑작스럽게 삼성으로 가라고 해서 얼떨결에 갔다가 결국은 고고인류학자와 박물관학자로서 최고의 경험을 한 이야기를 책으로 썼습니다. 무엇보다 호암미술관과 리움이라는 두 개의 걸출한 미술관을 만들어낸 이야기는 작가가 본인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부호였던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아들 이건희 회장의 내밀한 취향까지 엿볼 수 있어서 아주 흥미진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의 새 신간 ‘이종선 관장이 말하는 이건희 컬렉션’을 읽기 전에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읽은 손영옥 작가의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은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리움의 전 관장이자 이건희 회장의 배우자인 홍라희 여사의 발자취를 보여줍니다.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기증 이슈에 들떠 우리가 잊고 있는 삼성가 컬렉터 홍라희의 이름을 이 책에서 불러내고자 한다. 홍라희는 삼성가의 미술 경영인이었으며 신혼 초부터 남편 이건희와 함께 미술품을 수집해온 컬렉터고, 더군다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기에 남편에게 현대미술 가이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관습에 젖어, 의식하지 못하고 부르는 ‘이건희 컬렉션’ 대신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 이라 부르고자 한다. “
이 책의 재미는 컬렉션을 한 수집가뿐만 아니라 수집이 된 작가들에 대해서도 잘 설명이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유명하지는 않았으나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들까지 부부가 공부해 가면서 모은 작품 이야기와 사진은 컬렉션을 떠나 미술을 공부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무명의 화가가 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충분히 작품도 좋고 실력도 있는데 전쟁이나 사상 문제로 사라져 버린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었고 의미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그 책으로 인해 궁금해지는 것이 더 많거나 영감을 주는 책인데 그런 면에서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은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어 여러분에게 더 소개하고 싶은 책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머리가 복잡할 때 미술관을 자주 갑니다. 꼭 좋은 그림이 아니더라도 정원을 거닐거나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고는 하는데요. SPI 독자분들도 오늘 제 글을 읽고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이나 용산에 있는 리움을 방문해보면 어떨까 해서 이 세 권의 책을 소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