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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서재]미술관 경비원의 특별한 기록

2024.01.28 08:24:06

메트로폴리탄
패트릭 브링리
미술관
오늘은 지난 11월에 출간된 후 지금까지 교보문고에서 시/에세이 부분 1 위를 달리고 있는 베스트셀러 한 권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입니다. 원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입니다. 뉴욕 방문하는 이라면 최소한 한 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찾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서있던 경비원들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이 나오자마자 이 책의 주인공은 어떻게 자신의 평범한 직업을 특별하게 기록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어느 경비원의 특별한 기록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는 대학을 졸업한 후 ‘The New yorker(뉴요커는 저널리즘, 논평, 비평, 에세이, 소설, 풍자, 만화, 시를 다루는 미국의 잡지입니다.)'에서 글을 쓰던 저널리스트였습니다. 본인의 결혼식날 사랑하는 형의 장례식을 치르고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괴로워서 직장을 그만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숨고 싶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지원을 했다고 책은 시작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독자들은 이 특별한 경비원의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을 잘 쓰는 그의 능력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는 경비원의 눈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아침은 늘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더욱이 미술관 문을 열기까지 30분 정도 남겨두고 근무 자리에 도착하는 날이면 말을 걸어 나를 속세로 끌어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나와 램브란트, 나와 보티첼리, 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렬한 환영들뿐이다.”
 


경비원의 시선으로 본 미술관

책은 작가가 경비원으로 일한 10년 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 지원을 해서 유니폼을 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중간중간 형과의 기록, 주인공의 결혼, 자녀 출생, 동료들과의 우정, 그리고 경비원을 그만두는 과정을 메인으로 경비원으로서 좋아했던 전시장, 작품 소개, 그리고 관람객을 관찰하는 시선들을 따라갑니다. 시급이 특별히 높지도 않고, 하루 종일 서있는 직업이 편하지도 않고, 주말 근무 당번이 생각보다 자주 돌아오지만 주인공은 마치 그 시간들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듯 기록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과천현대미술관에서 이런 일을 해봐도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경비원의 시선으로 본 미술관은 관람객의 시선과는 많이 다릅니다. 경비원의 시선으로 기록한 인상적인 장면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1. 관광객들은 미술관을 처음 방문하면 차례대로 미술관을 관람하려고 시작하지만 이내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봤다가는 하루에 다 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크기가 아니라는 곳이라는 것을요. 그런 깨달음이 오면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있는 방으로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면서 꼭 보고 싶은 그림을 보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경비원들은 유명한 화가의 방으로 배치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매주 월요일, 그 한 주간의 경비 구역을 배정받고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전시장에 배치가 되면 기뻐하는 모습 하나까지도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이 책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런 인기 없는 전시장의 그림들을 작가가 묘사하는 방법인데 마치 그 그림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얼굴 하나, 옷의 주름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파라오나 동양화를 보는 서양인의 관점도 드러나 있어서 무척 재밌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된 어느 저녁, 운좋게도 중국의 전통 악기 공연이 열리는 애스터 코트에 배치됐다. 애스터 코트는 명나라 학자의 정원을 미술관 내에 재현한 곳이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는 동안 ‘고요를 찾아서’ 라는 뜻의 현판이 달린 정원의 월문(月門)과 ‘우아한 휴식’이라는 뜻의 현판의 일문(日門)을 가만히 바라본다. 또한 중국어로 풍경을 뜻하는 산(山水), 즉 산과 개울을 상징하는 석회암 기둥들과 물고기가 노니는 작은 연못 쪽을 본다. 그러면서 나는 이미 우아한 휴식을 취하는 법을 모두 깨친 듯 편안한 마음으로 약간의 자기만족마저 느낀다.”
 
 
#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단체 관람으로 온 학생들의 숙제 장면, 주인공의 어머니가 형과 주인공을 데리고 미술관을 다니던 경험들도 인상적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전 세계의 미술관을 가보면 어린 학생 무리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관을 드나드는 경험은 커서도 이어지는 경향이 커서 우리나라 학교들이 공교육에서 미술이나 음악교육을 더 열심히 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이 슬쩍 들었습니다.
“나는 조각 정원 옆 문간에 서 있다가 10대 청소년들이 과제와 관련해 토론하는 것을 엿듣게 됐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작문 주제를 받은 듯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말로 신을 믿었을까? 그들이 왜 그러했다고 또는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예술 작품 두 점을 근거로 들어 설명하시오.” 훌륭한 과제다. 나는 학생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엿듣기로 한다…. (중략) 그들이 결국 ‘어느 정도’ 처럼 책임감 없는 답변으로 생각을 타협해버릴까 걱정돼 조심스럽게 개입하기로 한다. “저기 너희들 도움이 필요하니?” 그들은 순간 내 근무복을 보고 깜짝 놀라 자신들이 뭔가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차분한 표정을 본 그들은 곧 안심하며 도와주면 고맙겠다고 말한다. 나는 작문에 쓸 만한 단어 하나를 알려 준다. 그리스어 단어 ‘에피파니( epiphany)' 는 원래 ‘신의 방문’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신의 계시와도 같은 깨달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인들은 꿈속에서나 깨어 있을 때나 끊임없이 에피파니를 경험했다고 알려 준다.”

이처럼 경비원의 시선으로 기록한 미술관의 풍경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책에 언급된 작품들의 설명이 매우 자세한 점도 이 책이 가치가 있는 이유입니다. 또한 작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웹사이트를 잘 활용하는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10년간 매일 경비를 서면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고르고 고른 작가의 안목을 음미해 보길 바랍니다. 다음 번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유명화가의 그림들만 얼른 보고 돌아오지 않고 작가의 시선을 따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유명한 공간을 색다른 시선으로 남긴 기록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 SPI 독자들께 소개합니다. 
김정은

김정은

SPI 대표

2018년부터 SPI(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SPI는 상업용부동산의 투명하고 올바른 정보와 데이터를 제공하는 전문 플랫폼으로, 깊이가 다른 상업용 부동산 아티클과 시장에 특화된 데이터 리서치 및 애널리틱스를 기반으로 출판,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람과 비즈니스를 연결합니다. 더 나아가 시장 발전에 기여하고 우리가 사는 도시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