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스누피 가든_사랑은 손을 잡고 걷는 것
제주도에 생긴 스누피 가든은 가 본 이들도 꽤 많을텐데 동심으로 돌아가기 딱 좋은 공원입니다. 스누피 가든은 당초 수목원 부지였는데 남해종합건설 창업주 아들인 김우석 에스앤가든 대표가 제주 중산간 지대 10만평 땅에 조경용 나무를 심어 오다가 그 중 2만 5,000평에 조성한 곳이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조경학 박사학위를 딴 김우석 대표는 부동산 개발 측면에서 지적재산권(IP)에 눈을 돌려 제주의 오름과 곶자왈에서 더 나아가 수목원에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접목하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백방의 노력 끝에 미국 피너츠 재단과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습니다. 스누피 가든을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11개의 제주도를 테마로 가진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공간마다 스누피와 친구들의 에피소드가 있어서 사진 찍기도 너무 좋고 그 에피소드 안에 철학자 스누피와 친구들의 명언을 읽는 맛이 아주 쏠쏠합니다. 이제 문을 연지 4년이 되었다는데 연간 80만명이 방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우석 대표는 옆에 스누피 내용 중 스포츠 주제를 따로 분류해 스포츠와 레저파크를 준비한다고 하니 스누피의 팬으로서 더 기대가 됩니다. 숲은 해마다 더 풍성해지니 다녀온 사람들도 제주도에 갈 때마다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또 스누피의 팬은 동서양과 나이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 제주도에 가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무척 좋아할 정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우석 대표가 피너츠 재단과 정식 계약을 맺은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인 것 같습니다.


2.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_기업인의 꿈
제가 몇 년 전에 런던에 방문했을 때 런던에서 제일 유명한 큐가든 대신에 방문했던 약용 식물원이 있습니다. 그 식물원의 이름은 첼시 피직 식물원(Chelsea Physic Garden)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여러 식물 중에서도 약용식물 연구를 위해 1673년 런던약사협회(Worshipful Society of Apothecaries)에서 조성한 약용식물 전용 정원으로 큐가든에 앞서 런던에서는 가장 오래된 식물원입니다. 정원 자체가 예쁘고 워낙 다양한 식물의 효능, 그리고 그 식물로 만들어진 약물에 대해서 아카이빙을 잘 해놓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후 향수 브랜드로 유명한 조말론(Jo Malone)에서 이 식물원과 콜래보레이션으로 'Herb Garden' 라인이 나왔을 때 너무 자연스럽게 아모레퍼시픽의 원료식물원이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식물원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방문해 봤을 텐데요. 우리나라 기업 중에 건축, 정원, 예술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열심히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애쓰는 기업도 많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름다운 사옥과 지하 미술관은 훌륭한 전시로 늘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사옥 주변의 조경은 지역 주민과 상인, 그리고 직원들이 함께 모여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마치 동네를 새롭게 변화시킨 듯합니다. 이처럼 사옥이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은 오산에 위치한 원료식물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인 이곳은 제가 방문했던 첼시 피직 식물원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예약을 통해 투어에 참여하면 팩토리, 원료식물원, 아카이브를 차례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1,600여 종의 화장품 원료인 식물과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를 담은 아카이브는 마치 살아있는 작품과 같습니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딩을 공간에 구현하려는 서경배 회장의 철학은 이곳 원료식물원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관련 내용을 담은 책 속 구절을 함께 공유하며 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공간을 방문하여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특별한 경험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아모레퍼시픽의 정신으로 정진합니다. 그래서 공간도 신경 써서 아름답게 만들고,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와서 보는 사람도 즐겁기를 바랍니다. 건축만큼 일반 사람들에게 긴 시간 동안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는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이 중심인 건물을 만든다’는 원칙과 함께 자연과 주변환경이 어울리는 건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경이 정말 중요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주요 프로젝트를 맡아 주시는 정영선 선생이 그래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이 결정된 후에 모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축의 완성은 조경에 있어요.”

3. 태화강국제정원_피에트 아우돌프와 태화강
조경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네덜란드 출신의 조경가 피에트 아우돌프(Piet Oudolf)가 참여한 첫 번째 아시아 프로젝트가 바로 이 태화강국제정원입니다. 피에트 아우돌프씨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태화강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었고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서 공단에서 버린 폐수가 태화강으로 바로 흘러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울산시가 2004년부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를 표방하고 시민들과 함께 태화강 살리기에 나섰고 민관의 노력으로 다시 생명의 강으로 부활한 태화강의 스토리는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루리가든, 독일의 비트라 캠퍼스, 런던의 서페타인갤러리 파빌리온정원 등을 만든 세계적인 조경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공장 폐수로 오염됐던 태화강이 생명의 강으로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울산 프로젝트’ 를 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공정원 작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관을 만드는 일입니다. 집에 정원이 없는 사람들이 편히 찾아와 자연의 변화에 감동하고 경관에 대해 열린 관점을 갖도록 하는 일입니다. 제 인스타그램 계정 (@pietoudolf)을 방문하고 제가 만드는 정원을 좋아하는 연령층은 주로 25~40 세입니다. 태화강국제정원이 젊은 세대가 자연을 접하는 ‘지속가능한’ 정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함께해 주는 모습이 힘이 됩니다.”
이 글을 읽고 꼭 울산에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경제 발전을 하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자연을 되살린 울산 시민이 자랑스럽고 이제는 철새들도 와서 노닌다는 태화강과 피트가 만든 정원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Japanese Garden이라고 불리는 일본식 정원은 세계 곳곳에 참 많습니다. 하지만 뭐가 한국식 정원이냐 하고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을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읽다가 한국식 정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들 한 번씩은 가봤을 것 같은 담양에 있는 소쇄원입니다. 소쇄원은 빗소리 소(瀟)에 깨끗할 쇄(灑)자를 쓴다고 합니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조광조의 제자였던 소쇄공 양산보(1503 ~ 1557)가 만들고 가꿨습니다. 기묘사화(1519)로 화를 입자 양산보는 소쇄원에 은거하며 뜻 맞는 벗들과 여생을 보냈습니다. 소쇄원은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에 탔지만, 후손들에 의해 복원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걸 가능하도록 한 대표적인 두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양산보의 친구이자 사돈이었던 호남 성리학계의 거두 김인후(1510 ~ 1560)가 지은 오언절구인 <소쇄원 48영> (1548년)과 1775년 제작된 목판본 <소쇄원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정원은 양천구 목동에 있는 오목공원이었습니다. 최근에 오목공원이 새단장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산책을 한 번 갔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주민들이 공원을 즐기고 있는 모습에 놀랐었습니다. 동네마다 공원이 가진 역할은 비슷할텐데 제가 공원을 찾은 시간이 아침 7시 정도였는데도 정말 사람이 많았습니다. 제가 주로 가는 여의도 공원은 아침 시간 보다는 점심 시간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단체로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이 좀 신기한데 오목공원은 아주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이들까지 이른 아침부터 다양하게 공원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이 간 목동에 사는 친구가 말해주기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오목공원은 밤에 불량 청소년들이 많아서 주민들이 피하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2021년 오목공원 리모델링 운영위원회가 박승진 대표(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에게 부탁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그때 박승진 대표는 바빠서 공원을 한 번 둘러보고 결정을 할 요량이었는데 오목공원의 모습이 박 대표가 어린 시절 살던 주택의 마당을 떠올리게 해서 그 프로젝트를 맡을 엄두를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명공모에 부탁을 받고 참여해서 오히려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과격한 안을 낸 것 같아요. 과격하다는 건, 공원에 회랑이라는 건축물을 새로 넣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으로 녹지 위주이고 기껏해야 정자나 파고라 같은 시설을 배치하는 정도로 생각됐거든요. 그런 기존 문법을 벗어나 회랑의 2층도 산책할 수 있게 하고, 공원의 가구도 고급으로 넣자고 했는데 덜컥 공모에 당선됐어요.”

정원의 위로라고 해서 나무와 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오랜 시간 기다려 정원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원을 만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을 요약해 보면 ‘자연에 순응하고 풀과 나무와 꽃들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리면 정말 아름다운 정원을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정이 우리 인생과 많이 비슷해서 더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한 다섯 개의 공원은 앞으로 크고 작은 공원을 만들 기회가 많은 우리 SPI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골랐습니다. 책 속엔 더 많은 정원을 만든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