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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서재]하라 켄야의 눈으로 보는 미래의 호텔과 관광

2024.09.08 09:03:37

편집 고병기

하라 켄야
저공비행
관광
몇 년 전 지인이 '저공비행(High Resolution Tour)'이라는 뉴스레터를 소개해준 적이 있습니다. 간헐적으로 오는 뉴스레터였는데 (알고 보니 한 달에 한 번) 열어보면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영상들이 들어있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뉴스레터중 하나였습니다. 받다가 보니 그 채널이 일본의 거장 디자이너인 하라 켄야의 채널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라 켄야는 2019년에 저공비행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소개하고 싶은 일본의 장소와 시설을 방문한 뒤 60초짜리 영상과 함께 글, 사진을 조합하고 편집해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라켄야는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로 제일 잘 알려져 있지만 일본디자인센터의 대표이자 무사시노미술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합니다. 하라켄야가 책에서 본인을 설명한 글입니다.
나는 디자이너로 일한다. 제조, 부동산, 백화점, 물류, 의류, 식 품, 술, 보석 장식, 미술관, 경기장, 서점, 도서관, 호텔, 료칸 등 활동 영역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브랜드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서부터 패키지 디자인, 북 디자인, 제품 디자인, 공간 디자인, 사이니지 디자인, 전시회 그리고 정보 발신 거점 프로듀스 등 크고 작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다. 즉 나의 일상은 공중에 무수히 많은 공을 계속 던지고 받는 저글링 묘기와 비슷하다. 바꿔 말하자면 사회와 세계의 접점을 연속적이고 다각적으로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일상을 보내다 보면 저절로 세상의 파도와 조류가 보인다.
'저공비행'이라는 책은 하라 켄야가 저공비행이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들여다보았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미래의 가능성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제안입니다. 읽다 보니 이웃나라 일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점(예를 들어 오래된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과 서사 등) 도 있고 또한 하라 켄야의 미래에 대한 제안이 꽤 설득력이 있어서 SPI 독자들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이 책의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저공비행으로 바라보다
2장    아시아를 돌아보다
3장    유라시아 동쪽 끝에서 생각하다
4장    일본의 럭셔리를 생각하다
5장    이동을 디자인하다
특히 5장에서는 하라 켄야가 생각하는 미래의 호텔과 여행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선 저공비행의 웹사이트를 한 번 보고 나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하라 켄야는 책에서 제조업만이 나라의 부를 만들 수 있다는 20세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관광업이 만들 수 있는 경제의 규모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얘기합니다. 관광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일본의 미래에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려면 서구의 문화를 모방하는 호텔로는 절대로 일본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가 없으며 일본의 전통에서 착안한 건축과 자연을 그 호텔에 끌어들이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하며, 그 호텔은 단지 숙소의 기능으로서가 아니라 일본의 관광자원(기후, 풍토, 문화, 음식)을 전파하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래를 여는 구체적인 예로 나는 ‘호텔’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호텔은 이동 거점으로 하룻밤을 묵는 혹은 행사용 공간이 아니다. '환경이나 풍토의 잠재된 가치를 음미하고 시설과 건축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내는 장치'를 의미한다. 내가 생각하는 호텔은 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 주변 경치를 훔치지 않는다. 만약 호텔이 없었다면 풍경도, 경치도, 식문화도, 문화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 땅에 잠재된 매력을 가시화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구상된 미의식과 지혜의 결정체다. 즉 호텔에 머무는 것 자체가 진짜 목적이 된다. 그런 호텔이 전국 도처에 만들어지는 정경을 상상했으면 좋겠다.
하라 켄야는 이런 호텔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만(Aman) 리조트의 창시자인 아드리안 제차와 스리랑카의 헤리턴스 칸달라마 호텔을 디자인한 제프리 바와를 소환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프리 바와 (Geoffrey Bawa)는 바로 아만리조트를 만든 아드리안 제차(Adrian Zecha)에게 영감을 준 건축가였습니다. 
스리랑카의 헤리턴스 칸달라마 호텔 /사진=헤리턴스 칸달라마 호텔 홈페이지

책을 읽다가 궁금해서 찾아본 제프리 바와가 만든 호텔은 스리랑카라는 나라에 대해 호기심을 가득 갖게 만들 만큼 아름답고 또 유명했습니다.

하라 켄야는 헤리터스 칸달라마 호텔, 호텔 오베로이 발리(The Oberoi Bail), 그리고 초기의 아만리조트와 같이 그 땅의 독자적인 문화와 환경에 뿌리를 둔 호텔을 선호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아만리조트가 일본에 진출할 때의 염려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했습니다.
나는 내심 '아만리조트'의 호텔이 일본에 생기는 일을 염려했다. 왜냐하면 일본인이 아직 완벽하게 달성하지 못한, 일본을 내걸고 세계를 맞이하는 호텔의 형태를 아만리조트가 선수 쳐서 제시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한국 호텔 시장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최근 한국에 아만리조트가 없어 아쉽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은데요. 그 이전에 한국인이 선보인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에 대해서 하라 켄야만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가 있을지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하라 켄야는 일본에 들어선 세 개의 아만리조트가 호텔로서 갖추어야할 수준은 매우 높았고 일본식 도입 방식도 정교하긴 하지만 하라 켄야가 상상하는 호텔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하라 켄야가 구현하고 싶은 미래의 일본을 이끌어 나갈 관광업을 뒷받침할 호텔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본적'이라고 해도 다다미방이나 방석을 깐다거나 쓸쓸한 운치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의례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호텔은 어디까지나 국제적인 공간이므로 료칸과는 서비스의 근간이 다르다. '쉰다, 먹는다, 잔다, 움직인다'와 같은 보편적 행위에 그 나라의 미의식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느냐 가 중요하다. 이는 곧 자연이라는 초월물과 얼마나 어우러질 수 있느냐는 어울림의 방식과 끌어들이는 방식, 대하는 방식, 맛보는 방식에 요점이 있다. 동시에 일상에서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어떻게 정화해줄 것이냐는 점을 통해 권위에 대한 동경과는 다른 일본의 럭셔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자연을 두려워하는 자세
• 안과 밖의 소통
• 현관과 바닥의 전환
• 안식의 형태
• 공간의 다의성
• 수직과 수평
• 모서리와 테두리
• 물과 온천
• 살아 있는 초목을 놓다
• 돌을 두다
• 청소
위의 관점으로 다룬 과제에 얼마나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평소 하라 켄야의 저공비행 웹사이트를 봐왔던 이들은 이 리스트를 보면서 바로 연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라 켄야의 미래 구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저공비행의 5장 <이동을 디자인하다>에서 중요한 단어는 '행(行)'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하라 켄야는 일본에 오는 관광객들이 대도시만 들렀다 가는 것이 아니라 일본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일본의 자연과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 저공비행이 가능한 소형 비행기, 자율 주행차, 철도, 페리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타고 싶게 만드는 디자인 혁신과 현대인에게 도시만 찍고 가는 여행이 아닌 천천히 음미하는 여행으로 패턴을 바꾸는 일을 할 <세토우치디자인회의>를 발족시켰습니다.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호텔은 풍토와 문화를 가시화 혹은 가치화 하는 사업이다. 이동은 장소와 장소에 피를 돌게 하고 그 일련의 과정이 시장을 맥동하게 한다. 같은 비전이나 전망을 공유할 수 있는 사업주들이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시선을 맞추고 협동할 수 있으면 꾸준히 새로운 차원의 결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1세기의 디자인은 그런 문맥에서 일하고 싶다.
하라 켄야의 저공비행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도 이런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무엇인가를 쫓아가기 보다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해외 여행자들도 같이 느낄 수 있게 하려면 해야 하는 일들이 어쩌면 인구 감소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호텔이라는 업의 정의에 대한 하라 켄야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합니다. 
 
김정은

김정은

SPI 대표

2018년부터 SPI(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SPI는 상업용부동산의 투명하고 올바른 정보와 데이터를 제공하는 전문 플랫폼으로, 깊이가 다른 상업용 부동산 아티클과 시장에 특화된 데이터 리서치 및 애널리틱스를 기반으로 출판,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람과 비즈니스를 연결합니다. 더 나아가 시장 발전에 기여하고 우리가 사는 도시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