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신간 『빅사이클(The Changing World Order)』을 읽었습니다. 시장의 사이클을 넘어서 국가와 문명의 흥망을 경제의 눈으로 읽어낸 책입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런 시기에 '월스트리트의 현자'라고 불리는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처음 레이 달리오를 알게 된 건 SNS에서 그의 어록이 담긴 카드를 보면서였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다루는 것이 꿈을 이루는 길이다"와 같은 명언들이 투자 관련 피드에 자주 등장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몇 안 되는 투자자였습니다.
1975년 자신의 맨해튼 아파트에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한 그는 현재 이 회사를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로 키워냈습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회사 규모 때문만은 아닙니다. 2007년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고 실제로 다른 헤지펀드들이 큰 손실을 입는 동안 브리지워터는 오히려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레이 달리오의 투자 철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감정이 아닌 데이터와 시스템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고집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은 사이클을 갖는다"는 그의 믿음은 수십 년간 일관된 성과로 입증되어 왔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레이 달리오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17년 『원칙(Principles)』을 출간하면서부터입니다. 이 책은 그의 경영 철학과 투자 원칙을 담은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레이 달리오
신간 <빅사이클>은 달리오가 지난 10년간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그는 과거 500년간 주요 제국들(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의 흥망성쇠를 분석하여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빅사이클의 단계는 새로운 질서의 시작에서 출발합니다. 전쟁이나 혁명 후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면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따라옵니다. 교육, 인프라,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증가하죠. 그러나 성공으로 인한 과신이 버블과 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과도한 부채는 결국 금융 위기를 불러옵니다. 이는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사회적 갈등과 내부 질서 약화로 이어지고 마침내 혁명이나 전쟁을 통해 기존 질서가 붕괴되며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는 순환 구조입니다.
레이 달리오는 이 사이클이 보통 75~100년 주기로 반복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이 버블과 사회적 갈등 단계 사이에 있으며 중국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전환기라고 분석합니다.
이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의 자본시장을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입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투자 본능을 레이 달리오가 본다면 어떻게 해석할까 궁금해졌습니다.
레이 달리오는 『원칙』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그가 수십 년간 관찰한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 패턴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금융위기 모두 "모든 사람이 확신에 찬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투자 행태를 보면 이런 군집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몇 년 전 암호화폐 열풍 당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투자에 뛰어들었고, 코로나19 시기 '동학개미운동'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사상 최대 규모로 주식을 매수하며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강남 아파트와 수익형 부동산으로 자금이 집중되다가 대출 규제로 갑자기 멈춰 버리고 다시 주식시장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투자에서는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독특한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동일한 비트코인이 한국에서 글로벌 시장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일이 빈번했죠. 이는 한국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단순한 투자 결정이라기 보다는 사회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입니다. 부동산 시장의 극히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수입이 있더라도 전통적인 경로를 통해 자산을 늘리기 어려워지면서 대안적 투자 수단으로 집단적 이동이 일어나는 패턴입니다. 특정 자산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면 대규모 자금 이동이 일어나는 구조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이런 현상을 레이 달리오의 프레임워크로 해석하면 개별 투자 결정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불안의 표출로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성장 경로(취업, 승진, 저축)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면서 사람들이 자산 가격 상승을 통한 우회로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레이 달리오가 『빅사이클』에서 가장 강조하는 개념이 '내부 질서(internal order)'입니다. 그는 강대국의 쇠퇴가 외부 침입보다는 내부 갈등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생산적 활동보다 자산 투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 사회의 혁신 동력이 약화된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말기, 영국 제국주의 시대의 종료기에도 이런 패턴이 나타났다고 그는 분석합니다.
한국의 상황에 이를 적용해보면 청년층의 부동산 투자 열풍이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문화가 우려스러운 신호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즉시 사회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산성 증대보다 자산 가격 상승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레이 달리오의 관점입니다.
SPI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질문이 책은 부동산 산업을 직접 다룬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레이 달리오의 분석을 우리 업계에 적용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첫째, 한국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세 제도가 사라지고 월세 시장으로 급속히 전환되는 지금 레이 달리오가 말하는 사이클의 전환점이 이미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분양과 매매에만 집중하는 동안 정작 월세 수익형 부동산이나 새로운 주거 형태에 대한 니즈는 과소평가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 산업이 사회의 내부 질서 강화에 기여하고 있는가? 주거 안정성을 높여 사람들이 생산적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지, 아니면 투기적 불안을 조장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빅사이클』의 핵심 메시지는 '모든 것은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호황도, 불황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사이클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레이 달리오는 성공한 투자자나 기업가들의 공통점으로 '독립적 사고'를 꼽습니다. 다수가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한 발짝 물러서서 전체 그림을 보는 능력 말입니다. 현재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나 자본시장에서 모든 사람이 확신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대상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업계 리더이자 투자자일 것입니다. 레이 달리오의 통찰은 그래서 더 진중하게 다가옵니다.
"가장 확신에 찬 시점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건 불확실성이 아니라 모두가 확신하는 분위기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장엔 소문과 추종이 넘치지만 당신은 그 중심이 아니라 경계선에서 구조를 보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레이 달리오가 40년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예측력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조차 의심하는 겸손함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레이 달리오의 책들이 벽돌책이긴 하지만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 일독을 권합니다.
김정은
SPI 대표
2018년부터 SPI(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SPI는 상업용부동산의 투명하고 올바른 정보와 데이터를 제공하는 전문 플랫폼으로, 깊이가 다른 상업용 부동산 아티클과 시장에 특화된 데이터 리서치 및 애널리틱스를 기반으로 출판,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람과 비즈니스를 연결합니다. 더 나아가 시장 발전에 기여하고 우리가 사는 도시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