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이 이상한 책인 이유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책으로 읽힌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 에세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철학서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반(反)자본주의 선언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투자자와 CEO의 눈으로 읽으면 이 책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놀랍게도 '인생 포트폴리오 설계서'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숲속으로 도망친 은둔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가장 냉정하게 구조화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두막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 음식값, 노동 시간, 생활비까지 모두 기록했습니다. 그가 한 일은 자연주의 실험이 아니라 “나는 무엇에 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라는 회계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에 따라 꽂히는 지점이 다릅니다. 학생에게는 자유, 예술가에게는 고독, 환경주의자에게는 자연, 그리고 투자자에게는 선택과 기회비용의 이야기로 읽힙니다.
월든이 170년 가까이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은 삶을 소비의 관점이 아니라 자산 배분의 관점으로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보다 무엇에 얽매이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은 시장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AI와 자동화, 초과 유동성의 시대인 2026년, 이 질문은 오히려 더 절실해졌습니다.
“우리는 정말 의도적으로 살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소로의 문체는 처음부터 편하지 않았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설교처럼 느껴지는 대목도 적지 않았고 몇 번이나 앞부분을 건너뛰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진 이 질문 하나만큼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서 2년을 살며 오두막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까지 정확히 기록했습니다. 28달러 12.5센트. 그가 비용을 그렇게 집요하게 기록한 이유는 절약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의 자산 배분표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집에 쓰고, 얼마를 노동에 쓰고, 얼마를 자유에 남겨두는가.
우리는 보통 금융 자산의 포트폴리오는 관리하면서 정작 삶의 포트폴리오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시간, 에너지, 주의력, 관계, 그리고 건강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들이 어디에 얼마나 배분되고 있는지는 대부분 무의식에 맡긴 채 살아갑니다. 소로가 월든에서 한 일은 수익률을 높이려는 투자가 아니라 리스크를 낮추는 재배치였습니다. 너무 많은 일을 떠안은 삶, 너무 비싼 생활비, 너무 많은 타인의 기대에 노출된 상태는 하나의 위기만 와도 무너질 수 있는 과도하게 레버리지된 포트폴리오와 비슷합니다. 그는 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삶을 다시 ‘디레버리지’했고 그 결과 가장 안정적인 자산, 즉 사유할 시간과 살아 있는 감각을 되찾았습니다. 이 숫자는 절약의 미덕이 아니라 선택의 기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어떤 선택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끝까지 스스로 자각하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조용한 절망'은 가난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삶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장면은 월든 호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는 호수를 하늘의 눈이라 불렀습니다. 하늘이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아침의 푸른빛, 한낮의 에메랄드, 저녁의 깊은 남색. 같은 호수지만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을 읽으며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에서 살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어디서나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그곳에서의 하루들. 하늘이 흐리면 바다도 함께 무거워졌고 하늘이 맑으면 바다는 푸르다 못해 쪽빛으로 빛났습니다. 석양이 질 때면 바다는 불타는 색으로 변했고 그때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곳은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근처의 저수지였습니다. 몬트레이보다 훨씬 조용한 그곳에서 물 위에 비친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생각이 느슨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들. 지금 돌아보면 그 또한 작은 월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로가 가장 사랑한 시간은 새벽이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직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해지는 순간. 그는 하루의 시작을 붙잡는 것이 곧 삶의 중심을 붙잡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침마다 휴대폰에서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알림이 울리면 오늘은 조금 더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라 이 문장이 유난히 깊게 와 닿았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커피, 독서, 그리고 산책입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창밖을 바라봅니다. 같은 풍경인데도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걷습니다. 걷다 보면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소로의 말처럼 걷기는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월든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얼음이 녹는 봄입니다. 겨울 내내 얼어 있던 호수가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물고기와 새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소로는 이를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부활로 보았습니다. 자연이 깨어나듯 인간의 의식도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물론 누구나 그의 삶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결국 태도에 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 2026년에는 그 질문을 조금 더 진지하게 붙들고 싶습니다.
소로에게 월든 호수가 있었다면 저에게는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아침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시간, 하늘의 색이 바뀌면 세상의 색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이 제가 만나는 저만의 월든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월든이 사람마다 다르게 읽힌다는 사실을 정말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은 혼자 읽을 때가 아니라 독서모임에서였습니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누군가는 자유를 말하고, 누군가는 불안을, 누군가는 자본과 선택의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 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026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다면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한 번쯤은 누군가와 함께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같은 문장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큰 자산이 되니까요. 결국 좋은 포트폴리오는 자산이 아니라 삶을 오래 지켜주는 배분에서 시작됩니다.
김정은
SPI 대표
2018년부터 SPI(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SPI는 상업용부동산의 투명하고 올바른 정보와 데이터를 제공하는 전문 플랫폼으로, 깊이가 다른 상업용 부동산 아티클과 시장에 특화된 데이터 리서치 및 애널리틱스를 기반으로 출판,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람과 비즈니스를 연결합니다. 더 나아가 시장 발전에 기여하고 우리가 사는 도시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