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데미안 허스트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그냥 흘려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 권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수전 막사멘과 아이비 로스의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입니다. 전시를 보며 느꼈던 감각을 이 책이 조용히 설명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전시와 함께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이런 순간을 뇌과학의 언어로 설명합니다. 예술적 경험은 단순한 취향이나 기분 전환이 아니라 뇌의 신경회로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고, 낯선 감정을 마주하고, 잠시 멈춰서는 그 순간들이 모두 뇌 안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전시를 떠올리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서로 다른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불편하고, 흥미로우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들. 책에서는 이런 상태를 뇌가 가장 깊이 작동하는 순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익숙한 것만 볼 때보다 서로 다른 감각이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더 또렷하게 깨어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날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이 제게 그런 경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수백 개의 약병이 정렬된 캐비닛 앞에 서 있었을 때 그 장면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약을 통해 삶을 조금 더 통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질서와 반복 속에서 오히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있지만 그것을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이상한 거리감. 어쩌면 우리는 늘 그런 방식으로 중요한 것들을 조금씩 멀리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술은 그 거리를 잠시 좁혀줍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예술을 통해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너무 크고 무거운 감정들을 조금은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안에 작은 여유와 이해의 폭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허스트는 말년에 꽃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벚꽃, 목련, 이름 모를 들꽃들. 평생 죽음을 바라보던 작가가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가장 덧없고 가장 아름다운 대상이었습니다. 피는 순간이 지는 순간과 함께 있는 존재들입니다.
저는 그 벚꽃 그림이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는 젊은 시절 죽은 사람의 얼굴을 기록하고 해골에 8,000여 개의 다이아몬드를 박는 등 매우 실험적인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그런 작가가 결국 꽃을 그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흐름처럼도 보였습니다. (‘말년’이라는 표현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긴 시간을 지나며 도달한 어떤 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어머니들이 꽃이나 나무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특별한 설명은 없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충분히 전해지는 그런 사진들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단순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이 머무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서 말하듯 아름다움 앞에서는 뇌가 자연스럽게 이완된다고 합니다. 무엇을 판단하려 하기보다 그저 받아들이게 되는 상태. 어쩌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런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해결하거나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이 경험은 특히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하루 속에서는 생각이 점점 단단해지고 때로는 조금씩 굳어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나 더 빠른 판단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자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은 그런 전환을 조용히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술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저자들의 말에도 동의합니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출근길에 잠시 멈춰 바라본 빛, 회의 전에 들은 짧은 음악, 걷다가 마주친 풍경 같은 것들도 모두 충분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마음에 드는 작가들의 그림을 모아두는 작은 습관이 있습니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한 번 더 보고 싶은 장면이나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저장해두는 정도입니다. 시간이 날 때 가끔 그 그림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때 느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주 짧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생각이 조금 느려지고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어쩌면 예술을 즐기는 방식은 그렇게 각자의 일상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시장을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많은 방법들보다 어쩌면 20분 정도의 예술이 더 솔직한 회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예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조용하고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저 역시 매 번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지만 가끔은 그 선택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선택을 하는 ‘나’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춰 서는 시간,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하나의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 중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조금 천천히 보고,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봐도 좋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충분히 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