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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사이드 테라스

 

담당자가 담당자에게.


생맥주를 앞에 두고 각자의 힘듦을 토해내기 바쁜 초여름 저녁이었다. "금요일 오후에 업무 요청 메일을 보내 놓고, 월요일 아침까지 회신해 달라는 인류애를 상실한 발주처 담당자 때문에 힘들다"는 C 건축 김 소장의 푸념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구사항이라도 명확히 말해주면 주말이고 명절이고 상관없지"라며, "설계안을 보내줘도 결정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계속 비슷한 평면을 조금씩 바꿔가며 검토만 주야장천 해주고 있어." A 건축 박 소장이 우유부단한 발주처 조직을 탓한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뜨끔한다. 나는 인류애가 깃든 합리적인 일정을 제시하며, 명확한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발주처 '담당자'일까.

한남동에서 온 발주처 설계 담당자의 사연입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서로 집중해 30년에 걸쳐 완성한 다이칸야마 힐사이드 테라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조금만 변명해 보자면, 위 이야기 속 상황은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주하는 흔한 장면이다. 결정권을 가진 한 명에 의해 움직이는 발주처 조직일 경우 갑자기 결정권자의 아이디어가 급발진하거나, 궁금증이 폭발할 수 있다. 담당자들도 여러 설계안 중 어떤 안이 좋은지 상부에 단순하게 보고하기 애매한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설계안이 딱 떨어지게 좋지 않은 경우가 다수고, 무언가 결정하는 일은 책임이 따르기에 망설인다. 숫자 문제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건축에서 이익이 극적으로 나오지 않을 때, 시간이 지연된다. 뭔가를 바꾸려면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걸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다.

현시점 내가 건축주 측면에서 설계 담당자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을 잠시 생각해 봤다. 딱히 관리의 문제나 설계 퀄리티의 문제가 없는 베리 나이스 상태다. 각 회사의 에이스들만 상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주변에 빌런이 없으면 내가 빌런이라던데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기적일까.

돌이켜 보니, 프로젝트가 초반부터 안정적인 상태로 진행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설계 담당자와 통성명하고, 계약하고, 킥오프 미팅하고, 밥도 먹고,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서로를 알아 갔다. ‘이 담당자는 꽤 중대한 사항을 소소한 일처럼 말하는구나.', '어라, 인허가 일정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잡는구나.' 회사마다의 특징도 있겠지만, 설계 과정엔 결국 몸담고 있는 사람의 특성이 더 많이 반영된다. 그 성향을 파악하고 맞춰가는 시간이 지나면 안정화 단계에 이른 느낌이 든다. 설계단계가 더 심화되고, 착공하고,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각 담당자의 또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겠지.

5년 전 강남의 한 건축사 사무소에서 온 사연입니다.


지금과 달리 내가 건축가 사이드에서 설계 담당자로 있을 때를 떠올려 본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다가가면 부담스럽게 여기던 발주처가 떠오른다. 이메일 끝의 "언제든지 문의하세요"를 그대로 믿고 질문을 쏟아냈더니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름의 센스를 발휘한답시고 질문 없이 설계안을 만들어 보여주면 소통 오류가 생겼다. "아… 그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설계 자체의 내용보다 보고 자료 포맷에 맞춰 예쁘게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해 보이는 회사도 있었다. 또는 담당자의 관심사나 그가 어필하고 싶은 부분에 따라 중요도가 치우치기도 했다. 그래서 요구사항은 매번 예측 불가, 어떨 때는 '내가 원하는 거 나도 몰라' 같은 OR1 도 받았다. 그럴 때는 ‘그냥 양으로 승부하자’, 가결론이 되기도 했다.
건축주의 의도를 파악하고 계획안을 제시하며 소통하는 것이 건축가에게는 늘 우선순위다. 그 와중에 주요 골자를 놓치지 않는 것, 그게 업무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숫자에 꽂히거나, 발주처 대표 취향에 꽂히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친다. 피 보는 건 바로 나다. 건축가일 때나, 건축주일 때나 마찬가지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될 때쯤


건축주와 건축가는 콘셉트 설계부터 기본설계, 인허가, 실시설계까지 프로젝트 사연에 따라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정도를 밀도 있게 교류한다.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 하나는 반년을 함께 했고, 앞으로 1년여가 더 남았다. 이렇게 오랜 기간 같은 것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실시설계가 끝날 즈음엔 엄청나게… 정든다. 어떤 정이든 말이다. 기둥과 창문 위치, 보와 기둥 크기나 설비 위치 같은 사소한 것부터 출입구, 조닝, 구조 형식과 외장재 결정 같은 큰 이슈들을 함께 다루다 보면 말이다.

서로를 리드하기도, 의지하기도 하면서 여러 순간이 지나간다. 사계절을 함께 겪고 나면 눈빛만 봐도 마음이 보인다. 그리하여… “기둥 위치는 결정했으니, 이제 점심 메뉴 결정으로 넘어가시죠?” 이 정도 사이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환상의 호흡이 될 때쯤 어떻게 된다? 프로젝트가 끝난다. 중도에 누군가 퇴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에서 다른 담당자, 다른 건축가와 만나게 된다. 다시 처음부터 탐색전 시작이다. 또 다른 연애… 아니, 또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되는군.


다이칸야마의 도시 문법을 만든 힐사이드 테라스


지난봄, 츠타야 티 사이트포레스트 게이트 다이칸야마2 도 둘러볼 겸 거의 10년 만에 다이칸야마로 향했다. 다이칸야마의 구 야마테거리3 를 걸으며 안경을 깨끗하게 닦은 뒤 다시 썼을 때처럼 경관의 해상도가 올라가는 느낌을 오랜만에 느꼈다. 아 맞아. 이게 다이칸야마였지. 이 거리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프로젝트는 힐사이드 테라스다. 힐사이드 테라스는 다이칸야마의 풍경을 만드는 복합 시설이면서, 티 사이트와 함께 이 동네 분위기를 완성하는 건물이다.
힐사이드 테라스 제1기(1969) A·B동 기다란 대지 형상에 대응하는 개발, 반지하 상가, 코너를 비운 개방 공간, 측면 진입 등의 특징을 가지고 1기 개발을 시작했다. ⓒWiiii
 
힐사이드 테라스 거의 막바지 단계에 지어진 미나 페르호넨4 이 있는 G동을 구경하다 문득 "도대체 힐사이드 테라스는 어디에 있는 거였지?"라고 말했다. 이미 그 안에 있으면서 말이다. 힐사이드 테라스는 건축물로 기억되기보다는 다이칸야마 하면 떠오르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 도시경관 자체가 되어버려 건축물로서의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힐사이드 테라스 제7기(1992) F·G동(6기) 중 F동은, 지상 6층이다. 1~5기까지는 전부 3층이었는데, 6기에서 처음으로 6층짜리 건물이 나왔다. 그리고 도로에 면하는 면은 저층의 형태를 유지했다. 사진 좌 ⓒkatsuya Iwasaki / 중, 우 ⓒ최차장
이 프로젝트의 건축주인 아사쿠라 가문과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는 약 30년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치 전설 처럼 들린다. 강산이 세 번 변할 시기인 30년 동안 한 명의 건축가에게…?? 설마 그랬겠어! 싶어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 그랬다. 이 관계가 힐사이드 테라스를 개발한 방식은 부러움 이상의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다.
힐사이드 테라스 제2기(1973년) C동: 1기를 건설하던 시기에 비해 차량의 통행이 늘어나 도로 측 창을 줄이고 대지 형상을 활용해 중정형 평면을 갖췄다. ⓒ Supanut Arunoprayote
힐사이드 테라스 제3기 (1977) D·E동 외장에 광택이 있는 타일을 사용했다. ⓒWiiii / 우 ⓒ최차장
 


건축주와 건축가의 만남과, 점진적으로 성숙하는 태도


아사쿠라 가문과 마키 후미히코의 만남은 게이오기주쿠 대학이라는 학연으로 이루어졌다. 전전(戰前) 도쿄부 의회 의장을 배출한 명가였던 아사쿠라 가문은 전후(戰後)전 소유 토지 대부분을 잃었고, 남은 구야마테도리 연변 토지의 부동산 개발을 검토하고 있었다. 선대 당주 아사쿠라 세이이치로와 현 당주 아사쿠라 도쿠미치가 모두 게이오기주쿠 대학 출신이었던 덕에, 교수의 소개로 같은 게이오 출신인 마키 후미히코와 1967년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5
가문이 원한 건 성급한 개발이 아니었다. 녹음이 우거진 환경을 살리면서, 장기간에 걸쳐 쾌적한 장소로 유지되도록 서서히 적응해 나가는 개발이었다. 마키의 사무소는 이에 따라 주거와 상업을 중심으로 한 마스터플랜을 수차례에 걸쳐 작성했다. 이 방향은 마키가 건축주를 설득한 게 아니었다. 아사쿠라 가문이 먼저 그런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맞는 건축가를 찾은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건축가인 마키 후미히코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원은 공원, 건축은 건축으로 분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무와 도로와 도시를 연결하고, 정면이 아닌 도시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진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담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대지 경계가 보이지 않는 설계를 했다. 넓은 도로에 면한 저층 건물들은 낯설 정도로 쾌적하다. 나중에 높이 규제가 풀렸을 때도 도로에 면하는 높이는 기존과 동일하게 맞추어 도시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6
건축가와 건축주가 서로를 잘 만났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단기 수익을 위해 볼륨을 키우면 황금알을 낳는 닭의 배를 가르는 격이고, 그 여파는 결국 내 건물과 내 수익 저하로 돌아온다. 말이 쉽지, 금싸라기 땅에 건물을 더 지을 수 있는데 안 짓는다니. 건축가는 해낼 수 있어도 건축주가 공감하기는 어려운 발상이기 때문이다.
제4기(1985) 아넥스 A·B동 과(마키 후미히코 사무실 출신의 모토쿠라 마코토가 설계) D동과 나란히 있는 덴마크 대사관(1974)이다. 덴마크 대사관은 마키후미이코가 설계했는데, 아사쿠라 부동산은 덴마크 대사관에 토지를 양도할 때 거리의 연속성을 지키기 위해서 "설계자는 마키 후미히코"라는 조건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아사쿠라 가문의 어찌보면 지독하다고 할 수 있는 지속성과 건축가를 향한 믿음이 다이칸야마의 근간이 되었다. 사진 좌, 중 ⓒmirudake.sakura / 우 ⓒ최차장
 
건축주에게나 건축가에게나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마키 후미히코 본인도 "힐사이드 테라스만큼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나의 사고를 점유한 프로젝트는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어떤 건축가도 시간이 지나면 스타일이 변한다. 그럼에도 같은 맥으로 개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마키가 형태보다는 사람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 상호작용, 도시주의라는 맥락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A, B동 개발 이후 이 계획을 계속 이어가길 원했던 아사쿠라 가문의 의지도 거리 전체를 아우르는 콘셉트를 유지하게 한 힘이었다. 다이칸야마의 도시 문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단기간에 천지개벽하는 고밀도 개발을 경험하는 서울에서, 하나의 기조를 유지하며 수십 년을 이어가는 개발 사례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서울처럼 단기간 해치우는 개발 방식과 유사했다면, 힐사이드 테라스는 그저 평범한 상업시설 중 하나로 남았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걸으면서 느끼는 다이칸야마만의 도시 문법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


도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흔들리고, 사람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OR을 발송하는 건축주를 상대해 본 건축가에게, 30년 가까이 일관된 의사를 유지하는 건축주란 꿈만 같은 이야기다.
건축주의 OR이 반을 차지해도 평판은 건축가에게 남는다. 그게 건축가에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다. 간혹 브랜드가 되기도 하지만, 비판도 적지 않다. 결과물의 책임은 결국 이름을 건 사람의 몫이다.
그렇다고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대형 사무소일수록 팀마다 특색이 달라 일관성을 기대하기 힘들고, 작은 사무소는 한 사람이 주도하는 디자인일 확률이 높아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지만, 일관성을 가지면 자기복제라고 조롱당하기도 한다.
힐사이드 테라스는 그 모든 조건을 비껴갔다. 내 외부 사이의 친밀한 규모, 보행로와 계단의 통합, 보도와의 자연스러운 연결, 불분명한 전면, 외부 계단, 투명한 유리. 그리고 주어진 틀 안에서 세련되어지고자 한 흔적들. 형태가 아니라 건축가와 건축주의 도시를 바라보는 태도가 일관됐기 때문에 30년이 지나도 같은 문법으로 읽힌다.
그래서 뭐가 남았냐. 마키 후미히코라는 건축가의 명성뿐 아니라, 아사쿠라 가문도 함께 브랜드가 되었고, 다이칸야마라는 도시 문법이 생겼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30년을 같은 방향을 보며 만들어낸 결과다. 
나도 이런 협업을 가끔 꿈꾼다.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끼리 여러 프로젝트를 일관된 철학으로 함께 하는 상상도 해본다.
이렇게 30년을 압축적으로 살펴봐서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나에게 기회가 온다면 마치 어느 영화의 대사 마냥, "어떻게 설계가 변하니." 하면서 끝나버릴 수도 있겠지.
준공시의 항공뷰  ⓒASP
 

[1] Owner's Requirement. 발주처가 설계자에게 전달하는 요구사항.
[2] 포레스트게이트 다이칸야마 :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한 복합주거단지. 2023년 개장. 주거, 상업, 공유오피스로 구성되어 있다.
[3] 구야마테거리 : 다이칸야마를 관통하는 대로. 힐사이드 테라스와 티사이트가 이 거리를 따라 위치해 있다.
[4] 미나페르호넨 : 일본 디자이너 미나가와 아키라가 1995년 설립한 패션 브랜드. 섬세한 텍스타일 패턴으로 알려져 있다.
[5] 위키백과 https://ja.wikipedia.org/wiki/%E3%83%92%E3%83%AB%E3%82%B5%E3%82%A4%E3%83%89%E3%83%86%E3%83%A9%E3%82%B9
[6] DAAS 인터뷰 시리즈 https://dora.or.jp/our_activity/maki_1/ 
[7] https://hillsideterrace.com/about/story/
[8] https://en.wikipedia.org/wiki/Fumihiko_Maki
[9] https://udcsa.gsd.harvard.edu/projects/14#overview
[10] https://www.pritzkerprize.com/jury-citation-fumihiko-maki
[11] https://www.tozai-as.or.jp/mytech/19/19-maki03.html
최차장

최차장

최차장

건축사 최차장은 10년 동안 건축설계를 하며 건축주의 의도를 읽지 못해 혼란을 겪었다. 최근 5년 동안은 시행사와 자산운용사에서 건축주 대변인으로 활동 중인데, 의도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언젠가 본인의 프로젝트에 활용하고자 여러 도시와 지역을 돌아다니며 건물의 목적값 구현 과정을 상상하고, 그 해석 내용을 글로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