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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물을 보면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 저 결과물은 건축가의선언일까, 아니면 건축주를 위한서비스일까1. 이 질문은 내가 건축을 만들고, 이야기하고, 직업을 선택해온 여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이 건물은 볼 때마다 그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든다.

성수동에 위치한 아이아이컴바인드 사옥 Ⓒ더시스템랩 홈페이지, 사진=김용관

 

처음 보는 모양새


 
사람들은 처음 보는 모양새를 예전에 봤던 닮은 무언가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우선 익숙한 것부터 시작한다. 이러쿵저러쿵 하며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 유별난 특징을 들여다본다. _『건축, 300년』, 이상현

재작년 이맘때 였나.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다가흐익?’ 하고 한 번 놀라고, ‘저게 뭐지?’ 하고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건물을 만났다. 튀어나온 눈알 네 개, 외계 생명체, 네 방향 천체관측소, 불시착한 우주선이 연달아 떠올랐다.

업계 종사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 건물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입면 디자인을 저렇게 해도 되는 거야?” 더시스템랩 감다살2, 감다뒤3같은 가벼운 감상부터, “입면은 어디까지 대중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가같은 진중한 논의를 넘나들며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고 싶어했다.

각종 콘텐츠에서도 이 건물을 꽤 열성적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가분수 형태의 구조적 불안한 모습은 이 기업이 스스로를 과시하는 효과를 준다.”4고 설명했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건축물을 만들어달라는 건축주의 요구에 브루탈리즘 스타일을거대하고 거친 존재감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했다.”5는 해석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건물입면에 대해 자주 이러쿵저러쿵 말한다. 뭐 어쩌겠어 눈에 보이니까. 집을 나서자 마자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것이 각종 건물의 입면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건물의 입면은 공공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입면이 공공재라서 경관심의가 존재하고, 건물을 봐야 하는 시민들이 입면의 좋고 싫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와 반대로 이 건물 주변의 웨딩타워나 한강변의 아파트 입면을 두고는 공공재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왜 가타부타 말을 보태지 않는 걸까.

저마다의 의견이 어떻든, 한 번쯤 각자의 정의를 내려야 했던 대화 속에서 나는 다소 과시적이고 특이한 건물을 지어보는 경험에 대한 호기심, 선망, 질투, 걱정이 섞인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의도가 무엇이건, 이 건물은 눈이 가요 눈이가 새우깡6같은 건물이다.

 

건축가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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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라는 직업의 모순점이 있다. 건축가는 건물을 만들지만, 완성 후에는 집주인에게 열쇠를 주고 떠난다.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만, 정작 그는 제때 식사를 할 수 없다. 기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만들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잘 쓰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의 수많은 직업들이 바로 이런 바보 같은 모순 속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_
『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더시스템랩이 설계해온 오피스에서는 대체로기능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읽혔다. 그야말로시스템이 형태를 도출하고, 그 형태가 다시 공간의 사용 방식을 규정하는 식이다. 그러던 그들이 갑자기 눈알 네 개 달린 머리-가슴-배 같은 덩어리를 서울 한복판에 세웠다.

더시스템랩이 설계한 오피스들 ⓒ더시스템랩 홈페이지

더시스템랩은 집주인에게 열쇠를 주고 떠나야 하는 건축가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었고, 마침 그때 아이아이컴바인드 사옥에서 평소 내고 싶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었다. 그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평소와 다른 건축 언어가 강하게 발현된 것이 바로 이런 모양새!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다.

아이아이컴바인드 사옥 ⓒ최차장

이 형상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 회의에서 알트7는 몇 개나 오갔을까, 레퍼런스는 곤충이나 북마케도니아에 있는 건물8에서 가져왔을까. 아니면 세명 디자이너가 머리, 가슴, 9를 각각 따로 디자인 해서 하나로 합치거나, 중층부의 돌출된 보와 기둥, 저층부의 매끈한 덩어리에 대한 건축가적 실험을 해보려고 한 것인가. 이 자리에서 그들이 무엇을 선언하고 싶었던 건지 여러가지 궁금증과 상상이 꼬리를 문다.

이슈에 비해 더시스템랩의 설계 의도와 논리에 대해 섬세하게 설명한 자료는 정작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확인한 범위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단서는 브랜드에서 나타나는 태도가 새로움이란 점10, 공간을 만들  때 ‘낯설게 하기11’ 기법의 적극적 사용이다. 이것이 이 건물을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 출발점이다.

 

아니면 OR(Owners Request)에 대한 서비스


아이아이컴바인드가 만든 매장에 갈 때마다, 갑자기 움찔하는 말, 겁나 큰 개 한마리, 우주복을 입고 누워 있는 발바닥이 사람 키만 한 사람, 움직이는 건지 확실하지 않은 표정 없는 로봇 같은 것들을 보면서 나는 납득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대놓고 갸웃거리면 그것은 힙이 아니다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스킨헤드 댄서들이 발광하는 듯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브랜드의 영상12을 보면서도 도대체 이게 뭐야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인스타에 범상치 않다 싶은 설치물과 공간의 이미지가 등장하면 , 젠몬13이군하는 감을 가지게 되었으니, 나처럼 브랜드에 눈이 흐린 사람도 자각할 만한 시그니처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아이컴바인드의 OR 서울에 없는 건물같은 주문이었을까. 브루탈리즘 스타일은 건축가의 입에서 먼저 나왔을까, 아니면 건축주의 언어였을까. 건축주가 이 프로젝트에 설정한 목적값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

무엇보다 이 건물에서 공사비, 그거 뭔데?”가 느껴진다. 건축에서는 기술과 재료에 얼마만큼 투자할지 의사결정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종종 듣지만, 현실에서 그런 투자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여기선 그 말이 현실이 된 느낌이다. 상층부에 과감하게 돌출된 캔틸래버 구조, 그 하부에 부착방식으로 마감한 패널, 매끈하게 시공된 콘크리트 면, 돌출된 보 등설계 완성도를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갔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읽힌다.

게다가 거슬리는 건물 치워버려수준의 결단으로 사옥 옆에 있던 작은 근생건물을 원복하는 조건으로 철거하고 그 위치에 예술작품을 설치해 버렸다.14 지상의 사람들과 예술작품 이 하나의 씬으로 완성되도록 하는 투자였다. 설계하면서 가끔 상상만 해보던 일을 관전하는 쾌감도 있었지만,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의 생각으로 그 보법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좌)임대건물 철거 전의 모습 ⓒ시티폴리오 (우)철거후 설치한 작품 ⓒ네이버블로그_아트로드

이 건물을 더시스템랩이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들 고유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전면에 활용하지 않은게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한우투뿔등심을 사놓고 카레에 넣어?’라고 말했는데 건물을 살피며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래, 한우투뿔을 카레에 넣으면 더 맛있어 진다. 시그니처를 잘 구현하는 자는 다른것도 잘하고, 영어 잘하는 내친구는 수학도 잘한다. 그런 친구는 늘 곁에 두고 싶은 법이다.

 

용적률 0% 에서 찾은 단서


탬버린즈 플래그쉽 스토어 ⓒ더시스템랩 홈페이지
아이아이컴바인드와 더시스템랩 이 두 회사가 협업한 건물 중, 용적률 0%의 탬버린즈 매장을 실제로 처음 봤을 때, 그야말로 ‘찢었다’15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디올 매장이 “More is more”를 외치듯 연무장길 한복판에서 블링블링한 악세서리를 풀장착한 채로 서 있었는데, 그 바로 앞에 “Less is more”를 표방하는 탬버린즈 매장이 추리닝 한 벌로 뚜벅뚜벅 다가와 너 뭐 돼? 하는 듯했다.16 그 대비가 각 브랜드가 가진 서사처럼 읽히기도 해 완벽한 장면이라 느꼈다. 
탬버린즈 플래그쉽 스토어와 디올 매장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 ⓒ최차장
지하만 있는 이 건물은 누구의 아이디어로 시작됐을까? 도시경관을 즐기는 사람에게 지상 연면적 0제곱미터, 용적률 0%는 꽤 흥미로운 볼거리지만, 땅의 가치가 높은 성수동 한복판에 “지상에 기둥과 보만 남기자”라는 아이디어를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제안하기는 상당히 도발적이다. 자칫하면 “이 건물, 그냥 다 없애죠?”로 들릴 테니까. 
이 프로젝트 시점부터 건축주가 상당히 많은 아이디어를 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큰 아이디어는 건축주의 주도로 시작하고, 그 OR을 납득하고, 디테일을 풀어내는 역할은 건축가가 맡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기둥과 보만 남긴 이미지를 더시스템랩이 만들었을 때, 울림이 있었을 것 같다. 많은 언어를 만들어 낸 건축주와 시각화의 전문성이 있는 건축가의 시너지가 만들어질 때의 울림 말이다. 
 

기여도 따지기


꽤 오래전, 내가 다니던 건축사무소에서 어느 기업 플래그쉽 스토어를 만들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디자인 회의, 공사 중 터지는 이슈들…. 그럼에도 어김없이 마감일이 오면 공사가 끝나는 마법사가 잠시 다녀갔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우리 팀은 대부분 환자가 돼 있었는데, 기업의 담당자는 화사한 얼굴로 각종 디자인 매거진에 등장했다. 지면에서 그녀는 가구, 조명, 조닝에 대해 그가 ‘해낸 일’을 설명했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우리가 제안했을 때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상하다고 했던 건 언제고? 인터뷰에서 우리 팀은 쏙 빠져 있었다. 언급이라도 좀 해주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담당자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녀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선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감독처럼 여러 안을 고르고, 디자이너와 시공사, 관계사들이 제시하는 대안 중 무엇을 살릴지 결정하면서 스토어를 완성해가는 경험. 그녀가 말하는 ‘내가 했다’는 “내가 선택했고, 그래서 완성됐다”라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결국 기여의 질과 양은 따지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내가 처음 붙잡고 있던 질문 ‘선언이냐 서비스냐’가 우문처럼 느껴진다. 애당초 둘을 깔끔히 구별하는 게 가능한가. 성과가 정량화되지 않는 일 앞에서 억울함이 자주 쌓였던 나의 경험 탓에 어떤 결과물만 보면 “이건 누가 했어?” 같은 질문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되면서 습관처럼 나온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프로젝트에서 ‘기여도’를 따지는 질문은 애초에 딱 떨어지는 답을 내기 어렵다. “관람객 여러분, 엔딩 크레딧 끝까지 스텝들 이름 하나하나 봐주세요. 건축주는 그저 설계사와 시공사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확실한 대답이 아니다.
 

다시 선언과 서비스


건축가는 자기가 일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해요. 프로답게. 건축주, 공무원, 시공사, 법규 등을 이유로 내 원래 의도는 이랬는데 결과는 저렇다고 푸념하는 사람은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없어요. _ 『의심이 힘이다』, 배형민, 최문규
프로젝트를 둘러싼 외재적 요소인 예산, 공사기간, 인허가, 민원, 발주 방식이 건축가가 스스로 선언할 수 있는 영역을 너무 많이 줄여버리는데 책임까지 져야 하다니. 내가 품었던, “이 건물은 건축가와 건축주 중 누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을까?”라는 물음조차 기운이 빠진다. 현실은 배형민과 최문규의 대화처럼 좋은 건축가가 되기엔 어려움이 많다. 지금 한국에서 지어지는 많은 건축이 ‘서비스’에 가깝고, 책임지려고 건축가가 어깨에 힘을 주기엔 점점 더 많은 건물이 외재적 요소를 ‘서비스’하는 데서 역할이 끝나게 한다. 물론 건축주의 요구를 납득 가능한 언어로 해석해 형태와 디테일로 풀어내는 능력은 건축가의 중요한 역량이다. 다만 그 역량만 과도하게 발달하고 있고, 건축가의 ‘선언’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
나는 건축가가 더 많이 선언할수록 한국의 설계 수준도 성장하고, 더 좋은 인재가 쌓여 장기적으로는 “전문가를 따라가는 시장”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믿음과 달리 이 시장이, 비전문가의 입김이 지나치게 점점 세지는 구조처럼 느껴진다.
이 시리즈의 컨셉을 잡으면서도 현실을 체감했다. 나만 주시하고 있어서 대부분은 모르겠지만, 이 시리즈를 ‘건축주의 목적값’에 따라 건축주의 꿈을 실현하는 건축 → 공공건축 → 자본주의 건축(개발사업) 순으로 다뤄왔다. 해외 3편, 국내 3편을 번갈아 가며 리듬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개발사업으로 지어진 건축을 써야 하는 6편 쯤, “특별함을 논할 만한 건물”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 사람에게 개발사업으로 지어진 건물은 딱히 추천을 못 하겠다는 피드백도 받았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개발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선언하는 건축’에서 매력을 느끼면서도, 실무에서는 현실과 타협에 기민한 ‘서비스형 건축가’를 찾는다. 그리고 그 기능만 계속 강화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많이 짓고 있으면서도, 건축물의 수준을 끌어올릴 기회를 놓치고, 동시대의 건축적 이야깃거리를 쌓지 못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대형 프로젝트에서 이제 국내 건축가는 해외 건축가의 선언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무르며, ‘주도’ 대신 ‘조율’이 주 업무가 되기도 한다.
내가 지금 건축의 OR을 만드는 일에 머무는 이유도 여기 어딘가에 있다. 내 앞가림 이슈기도 하지만, 설계 실무에서 ‘서비스’의 비중이 너무 비대해져, 건축교육을 기반으로 한 건축가의 선언 영역의 상당한 침해로 효용감의 문제를 느꼈던 것 같다. 장기화가 되면 분명 어딘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건축적 체력(?)을 기르기 위해, 건축가의 ‘선언’ 영역이 자라날 수 있는 방법을 구조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이 서비스로만 당연시되는 환경이 굳어지면, 일정 부분 감독보다 배급사가 더 많은 디렉션을 쥐고 결국 망해버린 영화들이 자꾸 나오게 될 수 있다. 
 

[1] 이 아티클에서 선언하는 건축가는 건축적인 실험을 토대로 본인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배출하는 건축가, 서비스 하는 건축가는 건축주의 니즈를 반영하는 건축가라고 정의한다.
[2] 감다살: 감각 다 살았다 (센스가 살아있다)
[3] 감다뒤: 감각 다 뒤졌다 (센스가 죽었다)
[4] MBC <이유 있는 건축 : 공간여행자>, 2025년 8월 5일 방송 중 유현준 건축가의 발언
[5] "성수에 기괴한 건물이 나타났다! 젠틀몬스터 신사옥! 이게 브루탈리즘? 메타볼리즘?" 건축분야 유튜브 채널 PHM TV. https://v.daum.net/v/0YpsDkCnXn
[6] 농심 새우깡 CM송 “손이 가요 손이 가~”를 변형한 패러디 표현
[7] 알트(alt.): 설계자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여러 버전의 대안 디자인. 같은 프로그램과 법규 조건 안에서 모양·구조·공법·비용이 다른 안들을 비교 검토할 때 쓴다.
[8] 북마케도니아 스코페 지역에 이 건물이 연상되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많다.
[9] 머리, 가슴, 배 중 배에 해당하는건 신사동 H갤러리에서 유사한 형태를 볼 수 있다.
[10] "젠틀몬스터 신사옥? 하우스 노웨어 서울에 대한 오해 풀기", 전종현, 디에디트
[11] "김찬중 : 젠틀몬스터·탬버린즈가 찾는 건축가, “내 건축엔 스타일이 없다”", 롱블랙
[12] 젠틀몬스터의 컬렉션 라인 'BOLD'의 두 번째 라인업 프로모션 영상
[13] 젠몬: 젠틀몬스터의 줄임말
[14] "젠틀몬스터 옆 20억 빌딩 '임대' 후 철거... "신사옥 가리지마", 땅집고, 2025.09.03. https://realty.chosun.com/site/data/html_dir/2025/09/02/2025090203893.html
[15]  찢었다 : 최차장이 가지고 있는 표현중 가장 최상의 표현
[16] “Less is more”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서 널리 알려진 표현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최소한의 수단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추구하는 모더니즘·미니멀리즘적 태도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More is more”는 장식, 색, 정보, 프로그램을 풍부하게 겹치고 쌓는 맥시멀리즘적 태도를 긍정하는 말로, 단순함보다 밀도와 과잉이 주는 즐거움과 에너지를 중시한다. 두 표현은 같은 “more”를 쓰지만, 하나는 ‘덜어냄을 통해 얻는 더 많은 것’을, 다른 하나는 ‘더하는 만큼 풍부해지는 것’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으로 인용된다.
최차장

최차장

최차장

건축사 최차장은 10년 동안 건축설계를 하며 건축주의 의도를 읽지 못해 혼란을 겪었다. 최근 4년 동안은 시행사에서 건축주 대변인으로 활동 중인데, 의도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언젠가 본인의 프로젝트에 활용하고자 여러 도시와 지역을 돌아다니며 건물의 목적값 구현 과정을 상상하고, 그 해석 내용을 글로 풀어낸다.